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렛츠런파크 서울 (문단 편집) == 뚝섬 경마장과 과거의 경마장 == [[한국사]]에서 경마가 처음 시행된 것은 1896년이다. 서양 경마를 본따 나귀 경주를 했다고 한다. 이후 1910년대에 [[일본]]에서 온 경마 조교사와 기수 등이 [[용산구|용산]] [[연병장]]과 지금의 [[동대문운동장]] 자리, [[한강]] 백사장 등에서 가끔 하던 가운데, 1922년에 조선경마구락부가 생기면서[* 일본에 의해 처음 시작되고 중단당한 것이 경마가 지금까지 도박으로 인식되는 것에 한몫한다.] [[서울특별시|서울]], [[평양시|평양]], [[부산광역시|부산]], [[대구광역시|대구]], [[군산시|군산]] 등 9곳에서 순회 경마가 개최되었다. 1942년, 일제에 의해 조선경마구락부가 조선마사회라는 이름으로 변경되고 1944년에 본격적으로 마필을 군용으로 공출하면서 조선마사회는 해체되면서 사실상 중단된다. 긴 공백기를 가졌지만 1949년에 사단법인 한국마사회가 새롭게 등장하였다. 이때 신설동 경마장에 [[김구]]와 [[이승만]] 등 인사들이 자주 방문해서 경주를 즐겼다고 한다. 신설동 경마장은 1950년 6월 25일 오후에도 대회가 열렸다가 긴급히 후퇴하는 과정에서 마필들을 당연히 챙기지 않아서 대부분 손실되었다. 1951년부터는 [[미합중국 공군|미공군]]이 신설동 경마장을 비행 기지로 사용하였다. 신설동 경기장에서 뛰던 말 중 '아침해'라는 말은 마주가 전쟁 도중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[[누나]]의 [[의족]]을 구하기 위해 [[미합중국 해병대|미국 해병대]]에 짐말로 팔았고, 해병대에 가게 된 이 말은 [[레클리스|그 이후로 엄청난 전공을 세워 하사 계급까지 받게 된다.]] 이 신설동 경마장 부지에 지금은 한국마사회 KRA 플라자 숭인 지점과 동대문 지점이 있지만, 그 역사를 잘 모르고 신경 쓰지도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. 해당 지점들에도 신설동 경마장에 대한 어떤 기념비는 없다. [[1954년]]에 한국마사회 직원들은 뚝섬에 새로운 경마장을 만들어 경마를 부활시킨다. 당연히 아랍계 마필은 죽고 없어서 제주도산 조랑말 잡종말을 이용해서 겨우 경주만 실시했다. 이후 뚝섬 경마장은 세계적으로 동떨어진 단일 마주제[* [[1993년]]까지 경마용 마필의 주인은 한국마사회 또는 덕마흥업 등 한국마사회 자회사였다. 경주의 박진감이 부족하고 부정 경마가 행해진 것은 당연했다.]와 부정 경마 및 마사회 직원과 마권과 관련된 비리, 혈통 없는 마필의 경주 편성으로 인해 여러 [[흑역사]]를 만들어 낸다. 40년에 가까운 뚝섬 경마 시절 동안 한국의 경마는 마권 매출액 규모는 증가했지만, 부정적 이미지도 결국 이때 생기고 말았던 것이다. 마권 발매가 [[컴퓨터]]화된 [[1984년]]에 서울 경마장을 착공하여 [[1989년]]에 공식 개장하였고 뚝섬 경마장은 그해 폐장되었다. 제주 경마공원의 경주로는 뚝섬 경마장을 본따 만든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